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1848년 생긴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차이나타운이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대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자 홍콩과 가까웠던 광둥성 출신 중국인들이 태평양을 건너 들어와 형성한 곳이다.
잭 니콜슨 출신의 영화 ‘차이나타운’의 무대였을 정도로 이곳은 관광명소나 다름없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중국 음식점과 각종 상점들은 항상 고객으로 넘쳐났다.
그랬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선 현재 수십년 된 중국 음식점들이 임대료를 못 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대도시의 차이나타운들이 불황에 허덕이며 몰락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만큼이나 오래된 뉴욕 차이나타운 역시 불황의 찬바람에 시련을 겪고 있다. 밤에도 성업 중이던 이 거리의 가게들은 점심 손님조차 없어 절반 이상의 테이블이 비어 있고, 밤이 되면 아예 모든 불빛이 사라진 ‘유령의 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위기는 코로나19 사태에도 입점 가게가 더 늘고 있는 플러싱 거리의 한인타운과는 정반대 풍경이기도 하다.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과 패권경쟁에서 기인한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공개 비난하면서 반중 정서가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 고착되기 시작했다. 갈등은 국제정치로까지 확대돼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선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2020년 초부터 번진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팬데믹이 기름을 끼얹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우한바이러스’라고 칭하고, ‘코로나19=중국’이란 등식이 일반화하면서 반중 정서는 극에 달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서방 전역에서 반중·반아시아 증오범죄가 잇달아 터졌다. 대낮에 뉴욕 중심가를 걷던 아시아인이 폭행을 당하고,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혐오발언을 들어야 했다. 외모가 비슷한 한국계 일본계는 중국계로 오해받아 엉뚱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반중정서가 일반화되자 100년 이상 지속돼온 미국 대도시 차이나타운들의 번영은 썰물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WP는 중국계 유명 요리사인 그레이스 영의 말을 인용해 “차이나타운에서 자란 중국계 2·3·4세대는 대부분 자수성가해 미국 사회에서도 중산층 이상으로 평가된다”면서 “다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차이나타운 가게를 이어받아 자영업을 해왔지만 지금처럼 혹독한 시련을 겪은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점점 황폐해지는 미국 수도 워싱턴의 차이나타운 풍경도 전했다. 다른 대도시와 달리 워싱턴 차이나타운은 정계 인사들이 드나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중국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점 등 부가가치가 높은 자영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상점의 3분의 1 이상이 임시휴업 중이거나 아예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 등지의 차이나타운도 마찬가지다.
WP는 “아시아계가 팬데믹으로 큰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계처럼 몰락 위기를 겪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문제는 차이나타운의 불황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계 미국인들 사이에 미·중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찬란했던 지난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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